2008년 11월 09일
큰 것과 작은 것
<큰 것과 작은 것>
하얀코끼리
하얀코끼리
나는 어두운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어두운 산길을 걸으면 왠지 마음이 평온해지고 사색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달이 떠있거나 달이 없는 컴컴한 산길을 걸으며 무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무서움 보다는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는 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숲길을 걸으며 삶에 관해 생각하고 우주에 관해 생각하면서 이따금 가던 길을 멈추고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이 녹아내리기도 한다. 캄캄한 숲길을 홀로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삶에 찌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어두운 숲속에 홀로 섰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참모습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어둠에 잠긴 숲은 인간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새벽 산을 오를 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동이 터오면서 눈부신 햇살이 숲 그늘 사이로 떨어져 내릴 때이다. 동이 틀 때 나뭇잎 사이를 뚫고 흘러내리는 햇살은 유난히 그 색깔이 곱고 황금빛이 난다. 동틀 때의 햇살은 여리고 수줍어 보이지만 손끝에 찍어 맛을 보고 싶을 정도로 곱고 곱다. 한낮의 쨍쨍한 햇살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있는데 나는 새벽에 막 피어오르는 햇살의 이름을 ‘아기햇살’이라고 부른다. 아기의 손발처럼 예쁘고 귀여운 햇살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기 햇살을 받으며 산에 오르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지만 등산을 마치고 산을 내려와 아침 일찍 대중목욕탕에 들러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은 더욱 더 기분 좋은 일이다. 막 받아 놓은 깨끗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살며시 눈을 감으면 나른하면서도 아련한 피로감이 밀려온다. 그 피로감 속에서 무한한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산을 내려와 조금만 걸으면 괜찮은 목욕탕이 있고 그 목욕탕에는 여러 가지 약초를 담가서 우려낸 갈색 빛이 나는 열탕도 있다. 열탕의 온도는 무척 높아서 들어갔다 나오면 피부가 빨갛게 익을 정도로 뜨겁다. 그런데도 열탕에 몸을 담그고 나면 왜 그렇게 시원한지 모른다.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고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
지난 주 일요일 이었다, 그날도 새벽 산행 후에 목욕탕에 들러 열탕에 몸을 담그며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열탕 옆에 퍼지르고 누워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내는 염색한 곱슬머리에 한쪽 귀에 작은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손가락에도 금반지를 끼고 있었고 나름대로 상당히 멋을 낸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목욕탕에까지 금반지를 끼고 귀걸이를 달고 오는 남자는 흔치 않아서 나는 그 사람을 조금 유심히 살펴봤다. 얼굴도 제법 미남이고 체격도 미끈했다. 코끝이 반질반질 한 게 언뜻 바람둥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누워 있는 그 남자의 다리 사이에 달린 엄청난 크기의 물건이었다. 슬쩍 살펴 본 그 남자의 것은 실로 대단했다. 대가리가 언뜻 보기에도 굵은 무 대가리처럼 보이는 게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커 보였다. 신기해서 조금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실망스럽게도 이건 순전히 인공 구조물이 아닌가. 귀두를 감싸고 있는 부분에 둥그렇고 굵은 인조 링을 끼워 넣어서 그렇게 커 보였던 것이다.
축 늘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림잡아 한 근은 돼 보였다. 나는 그 엄청난 크기의 물건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늘어져 있는데도 저 정도이니 화가 나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니 소름이 다 끼쳤다. 너무 신기해서 그 남자의 물건을 한참동안 요모조모 훔쳐보고 있었는데 그가 몸을 뒤척일 때에야 깜짝 놀라서 제 정신이 돌아 왔다. 얼른 눈길을 거두고 돌아서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남자는 어쩌면 돈 많은 여자에게 접근해 ‘싸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 하는 그런 사람인지도 몰라-
남자들은 벌거벗은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상대의 물건을 훔쳐보는 버릇이 있다. 나도 물론 그런 버릇이 있는데 그런 행동은 지극히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상대의 물건이 자기 것보다 큰지 아닌지 살펴보는 수컷의 본능적 행동이다. 남자들은 태생적으로 사소한 것에서도 상대와 경쟁 하려는 본능이 몸에 배어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오줌 멀리 보내기 게임을 하던 추억이 생각나는데 아마 그런 행동들이 원시시대부터 자연환경과 싸우며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수컷들의 종족보존본능의 유전자기 아직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남자들은 자신의 성기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크기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 물건은 무조건 크고 봐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스포츠 신문의 광고 면을 보면 남자들의 물건을 크게 만들어 준다는 비뇨기과 의원의 광고가 많이 실리고 있다. 그 방법과 기술도 실로 다양해서 굵기는 물론 길이까지도 길게 만들어주는 신기술이 등장했나 보다. 수술을 통해 근육을 절개해서 숨어있던 부분을 억지로 잡아 뽑아 주는 모양인데 숨어 있는 2cm찾아라, 뭐 이런 것인 것 같다.
남자의 물건이 커야 여성의 성적인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성에 관련된 칼럼이나 글들을 읽어보면 그 분야의 의사들은 한결같이 성기의 크기와 성생활의 만족도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일반론적인 말들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물건을 키워준다며 신문 광고란을 도배하는 걸까. 의사들이 이런 이중성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론은 돈이다. 남자들을 그런 식으로 현혹하면 장사가 되고 더구나 현금장사이므로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광고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코리아라는 나라는 오직 큰 것만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조금은 잘못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집도 커야하고 차도 커야하고 물건도 커야하고 한 번 쏠 때도 크게 쏴야 배포가 크다고 칭찬 받는다. 거기다 왕만두, 왕돈가스, 왕세수대야 냉면, 왕족발, 왕도매..등등 온갖 것을 크기로 제압하려는 허풍의 문화가 아직도 득세하고 있는 듯하다. 질보다 양에 집착할수록 문화적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질보다는 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삶의 질 보다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걱정하며 오로지 ‘양’만을 따지는, 그리하여 크기가 지배하는 이상한 사회가 돼버린 것 같다.
노부부 단둘이 사는데 아방궁처럼 크고 호화로운 집이 꼭 필요할까? 식구 없이 큰집에 사는 곳에 가보면 그 절간같이 휑하고 적막한 공기에서 감당하기 힘든 쓸쓸함이 절절이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단칸방일지라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신혼부부의 방이 훨씬 더 따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따금 주택가 골목길에 세워진 예쁜 소형 승용차에 유아용 카시트가 실려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그 차를 몰고 다니는 젊은 부부의 행복의 농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집에 살면서 소형차에 아기 태우고 주말 나들이 다닐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음은 조금 더 나이 들어 보면 안다. 집이 커지고 차가 커질수록 물질적 충만감은 커지겠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참다운 행복감은 점점 더 줄어든 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면 아련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작은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래전에 이어령 교수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 책에서 그는 경박단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축소지향 문화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바가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소형차 보급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쁘고 깜찍한 소형차들의 천국이 일본이다.
또한 일본의 생활용품들은 작고 섬세하며 아름답다. 일본의 주택들 역시 오밀조밀한 실속 형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일본인들은 축소지향의 문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한껏 발견해 내는 실속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란 나라는 비정치적으로 보면 좋은 점이 참 많은 나라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속이 너무 좁고 생각이 편협한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 남자들도 한국 남자들처럼 물건을 인공으로 키우는 일에 몰두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추측컨대 일본인들의 축소 지향 성향으로 보아 일본에는 그런 문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얼핏 듣기에도 일본의 비뇨기과에서는 그런 광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우리 한국인들은 오로지 큰 것만을 숭상할까. 큰 것과 작은 것에 관한 선호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목숨 걸고 지향하는 모든 큰 것들이 정말 좋기만 한 것일까? 여러모로 분석해 보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남자들 물건 하나만 생각해 본다. 억지로 인공으로 키우고 잡아 빼서 크기만 컸지 사실 막상 쓰려고 하면 흐물흐물한 가짜 왕자지보다는 오히려 작지만 단단하고 똘똘한 자연산이 훨씬 더 실속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예쁘고 깜찍하고 튼튼한 소형차처럼 말이다.
그리고 섹스란 물건의 크기로 제압해야 하는 힘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서 샘솟는 무한한 열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참다운 쾌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나의 무지일까?
어쨌거나 새벽 등산 후에 목욕탕에서 보았던 그 남자, 귀걸이를 하고 금반지를 끼고 엄청나게 키운 물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놓고 누워있던 그 제비처럼 생긴 남자를 생각하며 새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섹스가 갖는 진정한 의미, 또는 큰 것과 작은 것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해 두서없이 생각해 보며 글을 접는다. <끝>
# by | 2008/11/09 13:58 | 視視한 에세이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