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7일
히딩크와 대통령
<히딩크와 대통령>
하얀코끼리
삼국지에 나오는 3인의 상징적 인물, 다시 말해 유비, 관우, 장비는 개체적 인간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덕의 유비, 지혜의 관우, 용맹의 장비이지만 어떤 한 인간이 덕과 지혜와 용맹을 모두 갖출 수는 없다는 현실로부터 삼국지는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도원결의이며 도원결의를 통해 불완전한 3인의 인격체는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를 지향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비는 덕은 있으되 지혜와 용맹은 부족하고 관우는 지혜 와 용맹은 출중하되 덕은 유비에 미치지 못한다, 장비의 용맹은 천하제일이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덕은 유비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3인이 하나의 인격체로 뭉쳤을 때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완전한 인격체로 움직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삼국지가 하나의 인간학이라고 보았을 때 삼국지는 가장 먼저 인간의 불완전성을 주목하며 그 불완전성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용장은 지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용장의 상징은 장비요 지장의 상징은 관우며 덕장의 상징은 유비다. 따라서 장비는 관우를 따라가지 못하고 관우는 유비를 따라가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유비는 지도자가 될 수밖에는 없는 숙명을 안고 있었다. 물론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과 신분적, 교양적, 인격적인 부분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보편적 감성으로 봤을 때 이러한 덕장, 지장, 용장의 구분은 일면 타당한 면이 충분히 있다고 보여 진다.
현대사회에서 일반화 된 스포츠에서도 반드시 ‘감독’이라는 장수의 직책이 주어지는데 알고 보면 스포츠라는 것이 일종의 전쟁이며 전투이기 때문에 그렇다. 축구라는 운동 역시 그렇다. 자세히 살펴보면 축구라는 것도 분명 하나의 전쟁이며 전투다. 그라운드는 전장이요 선수는 병사이며 코칭스텝은 참모이고 감독은 말 그대로 전장을 총지휘하는 장수다. 협회는 군수사령부요 기술위원회는 합동 참모본부 쯤으로 보면 되겠다. 하지만 모든 선수 운용과 작전은 전적으로 감독의 재량이다. 그 누구도 간여할 수 없다. 조언은 할 수 있어도 강제성이 개입될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 없는 축구는 생각할 수 없고 감독 없는 축구는 장수 없이 전장에 나가는 부대와도 같다. 그래서 감독은 모든 책임과 동시에 영광도 함께 부여받는 장수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히딩크라는 축구감독이 있다. 이미 명장의 반열에 올라 누구도 그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서는 이미 영웅이 된지 오래고 얼마 전에 끝난 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히딩크가 유로 2008의 우승국인 스페인 감독보다 더 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한국 팀을 맡았을 때 역시 그러했다. 기껏 한국을 4강에 올려놓고도 그는 영웅이 되었다. 러시아 역시 4강에 안착한 것이 전부다. 도대체 우승팀의 감독도 아닌 그가 왜 자꾸만 영웅이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국 팀의 월드컵 4강, 러시아의 유로 2008 4강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지도력을 ‘히딩크의 마법’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히딩크의 그 탁월한 마법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지금껏 국가 대표 축구팀의 감독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언행과 행동을 주시해 왔는데 외국인 감독이든 국내파 감독이든 실패한 감독들은 하나같이 외부 환경 탓과 선수 탓, 또는 자기변명을 늘어놓는데 소질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히딩크 감독은 어떤 경우에도 선수를 탓하는 법이 없으며 협회의 지원에 불만을 드러낸 적도 없고 외부 환경을 탓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히딩크는 주어진 환경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어떠한 정파적 이익에도 치우침 없이 오직 능력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고 또한 자신이 선발한 선수에 대해서는 끝까지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어떠한 감정적 차별대우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는 선수들에게 생각하는 창조적 축구를 하도록 부단히 학습시키고 설득하면서 선수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 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선수들은 감독을 신뢰하고 믿게 되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적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명장의 조건이란 사실 별 다른 것이 없다. 감독과 선수간의 돈독한 신뢰와 그 튼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사고, 그리고 창조적 사고에 기반 한 동기 부여를 통해 최상의 능력 을 발휘 하는 것, 그 뿐인 것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가 된다, 이것을 전쟁의 조건으로 환원해 보면 병사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장수가 창조적 작전을 구사하면서 동기 부여를 통해 병사들의 사기를 충천하게 만들어 전장에서 백승 백승하는 원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아무나 히딩크 처럼 못하는 것일까.
다시 덕장과 지장과 용장의 얘기로 넘어 갈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는 제 각기 타고난 그릇의 크기가 있어서 용장의 그릇, 지장의 그릇, 덕장의 그릇을 갖게 되는데 용장의 그릇을 가진 자는 용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장의 그릇을 가진 자는 지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지용을 겸비하고 덕을 갖춘 사람만이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히딩크의 마법은 바로 히딩크가 이 지용을 겸비한 덕장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히딩크는 전쟁을 전문으로 하는 중세의 장수로 태어났어도 아마 전쟁의 명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즘 시국이 참으로 어수선 하다. 국가적으로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 국민들은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국민 탓만 하고 있다. 선수 선발은 기본부터 잘못되었고 경제는 외부 환경 탓만 늘어놓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도 없고 창조적 사유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오직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 붙이려하는 전근대적 행태를 보이면서 국민과 정부 간에 꼭 필요한 신뢰가 나날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인간의 불완전성을 들먹이게 된다. 불완전한 유비와 관우, 장비가 모여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천하의 패업을 이루었듯이 대통령은 부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의 인재들을 찾아 중용하여 지용을 겸비한 덕장의 면모로 일신하기를 바란다. 굳이 히딩크를 따라하지 않더라도 한 국가의 지도자는 반드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은 어떠한 정파적 이익에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 늘 국민과 국가라는 대의적 차원에서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보호하며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큰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큰 인물, 큰 지도자가 참으로 절실하게 느껴지는 여름이다.<끝>
# by | 2008/07/07 16:50 | 視視한 에세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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